<무산일기>라는 영화를 보았다. 제목만 듣고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추측하기 힘들다.
‘무산’이란 자의 일기인지, ‘무산’ 계급에 관한 내용인지, ‘무산’이라는 알지 못할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호했기 때문이다.
(보고난 후에도 꼽씹어 본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무산일기>는 감독이 곧 배우이며, 그의 실제 친구인 ‘전승철’로 동기화된다. ‘전승철’은 탈북자로 남한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분명한 노력을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현실은 냉혹하다. 스크린에서 바가지 머리와 하늘색 나이키 잠바를 걸친 그의 모습은 가끔 귀여움도 주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의 인물들은 일말의 영화적 과장도 없이 선명해서 차가울 뿐이다.
전승철은 그를 남한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형사와 함께 봉제공장을 찾아다닌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그에게 돈벌이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단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25’로 시작하는 탈북자이기 때문에 비자문제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감독은 전작 125 전승철에서도 같은 테마를 다룬적이 있다. 실제 친구였던 전승철에게 바치는 영화로서도)
“열심히 하갔습니다. 잘 할 수 있습니다”라는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 그는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포스터를 부치거나 현수막을 걸며 하루하루 연명한다. 그의 유일한 낙은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 여자를 눈여겨보는 것이다. 그녀가 노래방 주인의 딸임을 알고 우연찮게 그곳에서 알바를 하며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쾌거도 잠시 누리지만, 승철이 같은 교회의 신자임을 안 성가대아가씨(이면서 노래방(주인)아가씨)는 교회에선 서로 모르는 사람이 되어주길 부탁한다.
승철의 룸메이트이자 탈북자 친구인 경철은 승철과 대비되는 캐릭터다. 승철이 정직하고 묵묵한 타입이라면, 그는 자본주의의 맛에 철저히 길들여졌고, 승철에게 이중적인 모습을 갖으며 속물근성도 가졌다. 경철은 영화의 흐름에 극적 요소를 가하는 캐릭터로써 승철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기도 하다.
승철의 분신과도 같은 백구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캐릭터다. (개님 연기 역시 탁월!)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백구의 죽음은 승철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안겨준다.
<무산일기>가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은 승철의 캐릭터만큼 묵묵하고 정직하다. 승철의 뒤에 그림자처럼 붙어 따라다니면서 ‘헨드헬즈’기법을 사용하는데, 그 투박한 움직임은 긴장감과 함께 전승철에 대한 이입을 높여준다. 이는 곧 영화의 진정성을 나타내주는 중요한 윤리로 작용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전승철은 행복해 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몰입과 궁금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무산일기>는 시종일관 무표정을 짓는 영화는 아니다. 종종 딱 <무산일기>다운 위트를 종종 보여준다. 면접 보러간 봉제공장에서 승철이 얻어먹은 커피잔을 설거지하고 나온다던지, 일하는 노래방에서 노래방도우미들과 찬송가를 디스코버전으로 부르는 등의 장면들이 그러하다.
현실에서 그를 더 이상 볼 순 없지만, 여전히 전승철은 살아있다. 스크린에서 현실을 잘 견디는 전승철과 알게 모르게 우리 주위에 있을 전승철들. 어떻게 해야 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지 그게 정말 불가능하게 힘들다면,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게끔 지켜봐줄 순 없는 건지 <무산일기>는 꾸준히 되묻고 있다.
2011/07/01 21:53




덧글